마한(馬韓)-잊혀진 역사의 조각

 

  북두문학에서 상식의 눈으로 보는 한반도 고대사 "마한-잊혀진 역사의 조각"을 출간했습니다. 극히 빈약한 자료만 남은 마한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 그 주변을 통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역사의 흔적만 남긴 마한의 실체를 탐구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의 많은 부분이 '편의상 애국'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발견한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역사의 일부가, 사실은 꾸며진 얘기였다면 당신은 놀라게 될 것입니다.

 

 

 

[전자책]마한-잊혀진 역사의 조각 - 예스24

북두문학에서 상식의 눈으로 보는 한반도 고대사 `마한-잊혀진 역사의 조각`을 출간했습니다.극히 빈약한 자료만 남은 마한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 그 주변을 통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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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말갈

2. 한반도 고대사의 시작

3. 가짜 낙랑

4. 마한의 성격

5. 온조는 마한의 초청으로 왔다

6. 마한이 온조를 초청한 이유

7. 마한의 시작

7.1 고인돌 문화

7.2. 마한의 언어, 고인돌

7.3 청동기 유물로 보는 마한

7.4 마한의 벼와 고조선족 유입

7.5 조수 간만의 해로와 육로 교통

8. 마한의 문화

8.1 마한의 옹관은 관(棺)이 아니다

8.2 부장품 등으로 보는 마한

9. 두 개의 마한

10. 마한의 지배 계급

11. 한반도에서 쫓겨난 삼한인들

12. 한일 고대사의 중요한 열쇠 - 순장

13. 한반도의 질서를 바꾼 '400년 사건'의 실체

14. 백제 창업자는 정말 부여인이었을까?

15. 숫자 '80'을 센 자를 찾아라

16. ?대륙백제’ 미스터리

17. 김씨 가문의 백제 병합과 마한의 장보고

18. 우민화 정책

19. 한자의 유입 경로와 마한어

20. 유구와 열석

21. 말갈의 성격

22. 철기와 청동기에 대한 약간의 오해

23. 왜(倭)의 개념

24. 후기

 

마한(馬韓)-잊혀진 역사의 조각

 

  삼국통일을 완수했다고 소개되는 문무왕은 실제 삼국통일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독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진실은, 고대의 당사자들은 생각한 적도 없는 '통일'이란 단어는 현대에 와서 창작된 용어입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마한의 이야기 속에서죠.

  이 책은 독자들을 진짜 역사 속으로 안내합니다.

 

<책 속으로>

한반도의 고인돌은 이러한 변화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는 철기의 유입 경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북방계에 평석을 사용한 탁자식 고인돌이 많은 것은, 그 지역 고인돌족이 철제 ‘정’의 유입과 사용법을 먼저 터득한 결과다. 56p

특히 한반도는 중앙아시아처럼 끝닿은 데를 찾을 수 없는 광활한 대지를 기반으로 조성된 사회가 아니다. 그들과 달리 쉽게 끝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정학적 고립이 있는 사회다.

이는 다른 곳보다 혈연을 기반한 씨족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동네 모두가 친척인 셈이다. 근본적으로 수직적 지배 구조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구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품앗이 개념이 더 맞는 설명이다. 60p

다른 방식으로는 중국에서 생산된 명도전과 같은 화폐를 녹여 청동기를 제작하는 방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명도전 1개의 무게가 34그램으로 6개를 녹이면 쌍두령 1개, 7개를 녹이면 검파형 동기 1개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분석은 만주 지역에서 중국보다 많은 명도전이 출토되는 이유로 설명된다.

비파형 동검이 세형동검으로 바뀌게 된 것도 원료 조달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중국에서 수입한 비파형 동검을 녹여 세형동검으로 재탄생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65p

당시 한반도의 벼농사가 논벼와 밭벼로 이원화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이는 수리시설이 부족한 고대 시대의 지혜로 볼 수 있다. 69p

그런데 이 유적의 발굴지인 신창동은 영산강의 범람이 있는 곳이다. 언뜻 보기에는 유속이 완만한 강이 있어 정착하기 좋은 곳으로 보이지만, 실제 그 지역에 오래 거주했던 선주민들은 선택하지 않는 지형인 것이다. 그 말은 발굴지 신창동에 생활 터전을 마련했던 이들은 외부 유입된 고조선족이라는 뜻이다. 71p

이는 해안가에 위치한 해남 군곡리 생활 유적의 출토 유물을 통해서도 충분히 증명되는 바다. 영산강이나 금강을 타고 들어가는 내륙 수로뿐 아니라, 연안을 중심으로도 상당한 규모의 집단 교역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73p

이러한 내용은 마한권역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실용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한다. 한편으로는 지배층의 권력을 중시하는 중앙집권적 사회 구조를 지향하지 않았다는 설명으로도 연결된다. 80p

다른 하나는 부장품 중 순장의 유무다. 마한은 인간을 부장품으로 택하지 않았다.81p

변한의 철 수출과 관련해 삼한인들의 중계 무역이 아닌, 고대의 일본인들이 직접 와서 수입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직거래는 한참 후의 일이다.

고대 시대 큰 바다를 건너는 선박의 제조 기술은 중국→한국→일본으로 전래됐기 때문에, 그 시기 일본과 한반도의 무역에 대한 선점은 ‘ 왜’라는 명칭으로 불린 쫓겨난 삼한인들 외에는 나올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96p

금관가야의 몰락 제1 원인은, 그들의 가장 큰 고객이었던 삼한계가 더는 철기의 중간재인 철정을 구입하지 않게 된 때문이다. 400년 사건은, 김씨 가문이 고구려의 내정 간섭을 이용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이다.

김일제 가문의 영리함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례다. 109p

400년 사건은 영웅심에 고취된 광개토대왕을 이용해 금관가야의 새로운 제련 기술을 탈취하거나, 금관가야의 제철 산업 기반을 와해시키는 신라의 차도살인지계였을 가능성이 크다. 108p

중국의 여러 나라가 필요에 의해 백제를 호출했다.

백제는 중국 외부 국가 중 가장 완벽하게 중국의 문물을 복제한 첫 번째 국가였다. 지금 몇 개 남지 않은 백제의 유물들만으로도 결코 중국의 오랜 문화에 뒤떨어지지 않는 기교가 보이는 것은 그러한 설명에 부족함이 없다.119p

가야와 신라 지역의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대형 고분을 축조하기 위해, 그 지역 토착민들이 얼마나 시달렸을지를 생각해 보면 그따위 허튼 말은 나오지 않는다. 선사시대도 아니고 역사시대에 진입한 국가에서 과거에 없던 순장 악습을 만들어 낸 지배층이 정녕 같은 민족일까? 130p

만약 중국에서 온 ‘박석김’이 자신들의 언어 체계를 강요할 수 있었다면, 지금 우리의 말은 중국어와 같거나 비슷했을 것이다. 136p

 

<책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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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잊혀진 역사의 조각 | 이준엽 | 북두문학- 교보ebook

다 읽고 난 후, 두어 시간 말 없이 창 밖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접했던 것은 큰 위로가 됐습니다., 북두문학에서 상식의 눈으로 보는 한반도 고대사 "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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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준엽은 철학을 전공했고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며 현재는 다양한 분야의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사일런트 세일즈맨 컬러', '미술 디자인 입문 '색상 기초'', '점', '사람돈물', '소월맛집 '진달래꽃'', '아프리카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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